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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교회, 풍부한 자선사업, 너무 적은 정의의 실천

도로시 데이는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달리셨던 십자가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또한 도로시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일치함으로써 교회가 그리스도와 일치하기를 원했다.

“기업가 같은 사제들, 그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재물. 가난한 이들, 노동자들, 흑인들, 멕시코인들,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의 부족과 억압,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산업주의.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사제들은 아벨이기보다 카인이라고 자주 느끼게 하였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인가요?,’ 교회는 사회질서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교회에는 풍부한 자선이 있었지만, 정의는 너무나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은 성사 분배자들이었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가져다주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입게 해주며, 세상에서 우리가 평화와 일치감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최악의 적들은 집안에 있다.’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경고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란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돌보는 집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도로시 데이는 이상주의자이기는 하지만 결코 낭만주의자는 아니었다. 도로시 데이는 지상교회로서 가톨릭교회 역시 현세적 사명을 수행하면서 죄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는 그 가르침과 일치해서 살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선언할 수는 있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노동자> 신문은 신앙 안에서 교회와 세상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신앙의 핵심은 ‘사랑’이었다. 도로시 데이는 자서전인 <The Long Loneliness(오랜 외로움)>에서 “우리 모두 오랜 외로움을 안다. 우리 모두 유일한 해답은 사랑임을, 그 사랑은 공동체와 함께 오는 것임을 이제 안다.”고 말했다.

민들레 국수집 주인장 서영남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