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용연 신부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종교의 참뜻이라고 말한다.

▶수확한 감자 앞에 앉아 있는 옌볜농장 관계자들.
사랑과 자비는 뿌리가 같다. 나를 남처럼, 남을 나처럼 동등하게 여기는 자세다. 일방통행식 동정심과는 차원이 다르다. 각박한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몸소 실천하며 희망을 일깨우는 종교인들을 만나본다.[편집자]
"北동포 돕자" 6년째 감자 보내
황용연(53)신부는 1인 3역을 하고 있다. 첫째 교수. 대전 가톨릭신학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는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한국 가톨릭의 소외계층 지원 사업을 총괄한다.
이 둘이 공식적 활동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개인적 일이다. 그는 6년 전부터 중국 옌볜 일대 땅 20만평을 빌려 감자 농사를 짓고, 수확한 감자 전량을 북한 동포에게 보내고 있다. 매년 1천t가량이다.
지난 3일 충남 천안시에서 20㎞ 떨어진 연기군 전의면에 있는 대전 가톨릭신학대를 찾았다. 황신부가 "어서 오세유"라며 충청도 사투리로 반갑게 맞았다. "시간이 없으시겠어요"라고 묻자 "잘 쪼개 써야쥬"라고 대답했다. 동글동글, 까무잡잡한 얼굴이 농부를 많이 닮았다.
황신부는 사실 사회사업에 큰 뜻이 없었다. 시골 성당에서 교우들과 어울리며 친교 공동체를 이루는 게 소망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 옌볜서 거둬 매년 1000t 전달
약 15년 전, 그는 전의면 주민들과 한바탕 다투었다. 오갈 데 없는 노인을 몇차례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 소개하자 주민들이 계속 "더 보내달라"고 부탁해왔다. "친구 부모님들을 그런 시설에 보낼 수 있느냐"고 따지는 그에게 주민들은 "그러면 잘난 당신이 돌보라"고 대들었다. 황신부는 "알았다"며 노인들을 자기 집에 모시기 시작했다. 그의 노모가 밥을 하고, 빨래도 했다.
하지만 숫자가 늘자 힘에 부쳤다. 그래서 교인들과 힘을 모아 1991년 양로원을 짓고, 이어 요양소와 치매 시설을 세웠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돌볼 수 있다는 뜻에서 대구 가톨릭대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두 곳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도 땄다. 그러자 일은 쌓여만 갔다. 95년 대전교구에서 사회복지국장을 맡겼고, 2002년엔 주교회의 일도 떨어졌다. 그는 대전교구에선 거의 처음으로 아동.청소년.여성 상담소 등 복지시설 30여개를 세우며 교회의 사회봉사를 주도했다.
그는 98년 전환점을 맞는다. 녹내장.백내장 등 옌볜 조선족 동포의 눈 질환 의료사업을 돕다가(지금까지 500여명이 혜택을 봤다), 그곳에 탈출해온 북한 주민의 식량난을 몸으로 겪은 것이다.
"결핵을 치료하려면 결핵약을 써야 합니다. 기침약이나 해열제를 썼다간 병만 깊어지죠. 탈북의 근본 원인은 식량난입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선 탈북 대열을 막을 수 없죠."
황신부는 감자를 선택했다. 감자는 한해가 지나면 독성이 생겨 먹을 수 없기에 북한군 식량으로 흘러가기 어렵다. 우유.콩에 버금가는 완전 식품으로, 예부터 구황 작물로 쓰였다. 그러나 교단 차원의 도움은 여의치 않았다.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 1000여평을 처분하고 농협지점장으로 있는 동생의 집을 은행에 잡혀가며 감자 농사에 뛰어들었다.
"동생에게 미안하죠. 하지만 먼 훗날 나라가 통일되기까지 미약하나마 한몫을 거드는 일이라고 설득했죠."
그는 북한 당국자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한국 측에서 건네준 물품을 어디에 썼는지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신뢰가 쌓이고 대북 지원도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살인자도 용서한다는데 형제끼리 반목할 이유가 있습니까. 특정 종교 차원을 넘어 홍익인간이란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을 동북아 전체로 확산시켰으면 합니다."
*** 노인 돌보며 사회복지학 공부
황신부는 '농사꾼'이 다 됐다. 농촌진흥청에서 펴낸 '감자백서'를 달달 외울 정도다. 그는 "팔자가 드세 여기까지 왔다"며 껄껄 웃었다. 그래도 근심은 있다. 다음달 중순 파종을 시작해야 하는데 돈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되겠지유. 걱정한다고 뭐가 되나유." 그런 낙천성이 그를 떠받쳐온 원동력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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