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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영성 ㅣ 묵상

2021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2021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주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원칙과는 거리가 너무 커 보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혹시 유치원에서부터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경쟁의 시작입니다. 다른 학생과의 비교를 바탕으로 점수가 매겨지지요. 이 시간이 중학교, 고등학교 여기에 대학교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서 끝나도 꽤 긴 시간을 경쟁에 쏟아부었다고 할 수 있는데, 취업과 승진을 위해 계속해서 경쟁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 아니면 나와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이에게만 사랑을 주려고 합니다.

이런 차별적인 사랑을 하기에 미움이라는 감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전히 경쟁 속에서 이기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상황에서 마음의 병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진정한 가치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사랑을 ‘우리가 하나라는 그 느낌이 바로 사랑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라는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 하나라는 느낌을 늘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마음의 병을 없애고 진정한 가치 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당신의 몸으로 보여주셨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바로 ‘용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과 자애를 비롯한 모든 일에서 당신처럼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바로 용서의 모습입니다.

카인을 해친 자는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도록 정해졌고,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앙갚음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앙갚음할 마음을 내려놓고 대신 그만큼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노여움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계속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노여워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일흔일곱이라는 숫자를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아담에서 예수님께 이르는 세대를 일흔일곱으로 루카 사도가 나누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즉, 한 세대도 빠지지 않는 용서라는 것으로, 용서 안 될 죄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조건적인 사랑으로는 마음의 병을 없앨 수 없습니다. 오직 용서라는 진정한 사랑을 통해서만 참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양보가 때로는 성공의 가장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영국속담).


사진설명: 용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