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년 3월 29일 성주간 월요일
‘참 신기하죠. 내 고민엔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대면서 남의 고민을 들으면 해답이 너무도 선명히 보이고, 내 집 대청소를 할 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데 남의 집 정리하는 거 도와주러 가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정리를 잘하냐는 소리를 들으니 말이에요.’(이석원,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중에서)
언젠가 읽은 책의 한 구절입니다. 이 책의 내용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보지 못하면서 남은 너무나 잘 보는 것 같습니다. 내 눈이 나를 향해 있지 않고 남을 향해 있어서 그럴까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비판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비판을 가지고 남을 설득하려고도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예측을 쏟아냅니다. 이 말대로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 전문가의 예측은 실제로 50%도 맞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전문가의 말도 정확한 예측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도 이런데 하물며 비전문가인 나의 말은 얼마나 맞을까요?
비판적인 시각이 이 세상을 발전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비판적인 시각이 행복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자기를 먼저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습니다. 이는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먼저 머리에 향유를 붓지 않고 겸손하게 시중을 든 다음에야 그렇게 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런 겸손에서 주님께서 받으실 고통과 시련을 위한 준비가 나오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향유를 붓는 마리아의 모습에 유다는 신심을 가장하여, 자신이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때 그분 목숨에 매긴 값보다 향유를 더 값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주님과 향유를 붓는 마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사랑 행위는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일과 대립하는 행동으로 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로, 곧 그들 곁에 오래 계시지 않을 주님을 영광스럽게 한 행위로 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사랑의 실천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제쳐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에 섬기는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선 마리아에게 당신의 몸을 맡기실 수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보다, 주님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시간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용기있게 앞으로 전진하며, 식별을 통해 하나가 되고,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꿈을 찾아내 실행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둔 길을 찾아내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프란치시코 교황).
사진설명: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드리는 마리아.

'천주교 > 영성 ㅣ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왜 태어났을까요? (0) | 2021.03.30 |
|---|---|
| 2021년 3월 30일 성주간 화요일 (0) | 2021.03.30 |
| 넘어진 덕분에…. (0) | 2021.03.29 |
| 2021년 3월 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0) | 2021.03.28 |
|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수님 (0) | 2021.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