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외로움을 느낄까요? 대부분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서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착각 중의 하나가 집단 전체에 인정받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100% 구성원에게 인정과 지지를 받을 수가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각종 선거에서 100%의 몰표를 받아 당선되는 예는 없습니다. 그리고 60%만 자신을 지지한다고 실망하고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너무 좋아할걸요?
집단 안의 구성원 중 단 한 명이라도 내 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소속감이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100%의 지지를 받으려다 보니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속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관계 안에서 좋은 가치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치를 좇아야 그 가치의 중요성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힘차게 살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좋은 가치를 좇는 사람이 늘 당당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나의 세계가 확장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맞설 힘과 지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많은 순교자가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좋은 가치를 따르는 길은 주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잘 사는 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의 니코데모와 이야기하시는 장면의 연속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아버지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 두터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들어올린 구리뱀은 죄를 기울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지 않기 위해 반드시 봐야만 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치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 역시 십자가에 못 박혀 들어 올려졌습니다. 우리 역시 죄로 기울어져 있기에 주님을 봐야만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용서를 얻을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런 관계를 위해,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는 그 관계 유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늘 우리 편이 되어 주시는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무엇을 했느냐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사진설명: 니코데모와 말씀을 나누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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