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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영성 ㅣ 묵상

2021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소설책을 읽다가 우리 모두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이곳에 그 내용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소설 속의 아버지가 시험에서 빵점 맞은 아들에게 문제를 냅니다.
“1,000 더하기 0은 몇 일까?” “1,000이요.”
“맞아. 그런데 왜 1,000이지?” “0은 있으나 마나 한 수니까.”
“두 번째 문제, 1,000 빼기 0은 몇 일까?” “1,000이요.”
“맞아. 왜 1,000이지?” “0은 있으나 마나 한 수니까.”
“마지막 문제, 1,000 곱하기 0은 몇 일까?” “0이요.”
“0은 있으나 마나 한 숫자인데 왜 정답이 0일까?”
그러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0은 있으나 마나 한 숫자가 아니야. 빵점 맞아도 빵점을 맞은 게 아냐. 0이 아무 것도 아닌 수가 아닌 것처럼 말이지.”
우리는 종종 있으나 마나 한 행동으로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쓸모없는 행동이라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면서 시간만 낭비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0’이라는 숫자가 아무것도 아닌 전부인 숫자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가치 없다고 평가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너무나 필요한 그래서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선, 기도, 단식과 같은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정성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많은 사람이 이 자선과 기도, 단식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인정받기 위한 행동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만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줘야 가치 있는 것처럼, 또 그렇게 알아줘야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버려야 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행동이 아닌, 하느님께 보이기 위한 행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모르시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숨은 일도 보시기에, 당신을 향한 그 모든 자선, 기도, 단식을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곧바로 커다란 은총과 사랑으로 갚아 주십니다.
‘0’이라는 숫자가 있으나 마나 한 숫자처럼 보이지만, 모든 숫자를 ‘0’으로 만들 만큼 힘 있는 숫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선, 기도, 단식도 사람들이 모르기에 ‘0’처럼 하나 마나 한 행동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숫자 ‘0’처럼 자신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힘 있는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행동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자선과 기도 그리고 단식에 대해 묵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만약 모든 사람의 충고대로 집을 짓는다면 비뚤어진 집을 짓게 될 것이다(덴마크 속담).
사진설명: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