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1일 성주간 수요일
어렸을 때, 어른들이 길에서 다투는 모습을 종종 봤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워낙 투철한 신고 정신과 피할 수 없는 스마트폰에 의한 촬영으로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싸울 수 없는 환경이 되었지요. 하지만 예전에는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꼭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말입니다. 당연히 누구인지 모릅니다.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닐까요?
알아보지 못하기에 화가 더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제가 누군지 알아요?”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아마 기가 막힐 것입니다. 당연한 질문을 하니까 말이지요. 그러나 자녀는 부모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하는 질문입니다. 믿음 없는 상태, 그래서 싸움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자신에 대해 계속해서 말합니다. 지금 얼마나 힘든지, 너무 어려워서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하지 않냐고 말합니다. 마치 “제가 누군지 알아요?”라고 묻는 것만 같습니다. 바로 믿음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주님과의 관계가 호의적일 수가 없습니다.
무교절 첫날은 축제일 전날 저녁, 예수님과 제자들은 파스카 축제를 지냅니다. 축제 음식을 차릴 집도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기꺼이 고통을 당하려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처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시려고 그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시지요. 믿음 없는 유다의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혼란스러워하자, 예수님께서는 그가 유다임을 밝히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넘긴 진짜 배반자는 악마일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을 ‘주님’이 아니라 ‘스승님’이라고 부름으로써 믿음이 없었음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단죄한 셈이 되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 유다도 배반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과연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 주님과 친밀한 관계 그리고 언제나 함께 하는 관계를 만들고 있을까요?
내일부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게 되는 성삼일을 보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키워나갈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들은 종교를 위해 말다툼하고, 글을 쓰고, 전쟁을 하고, 죽기도 하지만 단 한 가지가 없다. 사람들은 종교를 위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찰스 케이럽 콜튼).
사진설명: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말하며 떠나는 유다 이스카리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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