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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영성 ㅣ 묵상

2021년 6월 2일 연중 제9주간 수요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어느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재능을 하느님을 위해 쓰고 싶어서 신학교에 들어갔고 신부가 되었습니다. 몇 년 뒤, 본당신부가 되었고 이 본당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겠다고 다짐했지요. 성가대를 활성화하고 미사를 창미사로만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말합니다.
“신부님, 미사가 너무 길어요.”
어느 신자가 찾아와서 말합니다.
“신부님, 성령 기도회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이 말을 듣고 본당에 성령 기도회를 만들고 자신도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싫어하는 본당 신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신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신부님께서 유머 감각이 있어야 신자들이 찾아옵니다.”
강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고, 각종 유머를 남발했습니다. 그런데도 신자들이 줄어듭니다.
이 신부님은 남의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정작 하느님의 말씀은 듣지 않은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가이 사람들과 논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을 하지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사후세계의 일입니다.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의 편협된 사고를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말로써 하느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크신지를 보여주시지요.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브라함에 맞게, 이사악 시대에는 이사악에 맞게, 야곱의 시대에는 야곱에게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 시대에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지금 내게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의 말만 들으면서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며,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대한 관심 안에만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있습니까? 우리가 들을 말은 세상의 말보다 하느님의 말씀이며, 세상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들 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나 작은 차이가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이 작은 차이는 태도인데 태도가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하는 것이다(클레멘트 스톤).
사진설명: 부활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