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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영성 ㅣ 묵상

2021년 6월 4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글쎄 우리나라에 예수님이 자그마치 20명 넘게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부르는 사람이 20명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만큼 20명 넘는 예수가 자기를 따르는 제자단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20명 모두가 진짜 예수님일까요? 아니라면 그중에 누가 진짜 예수님일까요?
단언하는데 이 중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치의 하느님이시기에 여러 명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또 이천 년 전 교회를 만드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에 맞게 활동하시는 분이기에, 과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리가 없습니다.
많은 성인 성녀들은 예수님과 똑같이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가난과 겸손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소위 자칭 예수라고 하는 자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취합니다. 교만하고 부유합니다. 세상과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딱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분을 어떻게 믿고 따르고 있나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신원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구약성경의 말씀에 따라 사람들은 다윗의 후손으로부터 메시아가 나온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렇다면 다윗이 메시아보다 더 윗분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다윗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이는 곧 인간적인 기준으로 주님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적인 기준을 늘 뛰어넘으십니다. 따라서 주님을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조그마한 자기 뜻 안에 그 크신 주님을 담으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을 담지 못하고 엉뚱한 거짓과 모순만을 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낮춰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감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얼마나 낮추고 있을까요? 그리고 주님을 위해 내 십자가를 얼마나 잘 짊어지고 있을까요? 인간적인 기준보다는 주님의 기준을 내세우며 살아갈 때, 참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어렵고 힘든 상황이 찾아와도 주님과 함께하기에 기쁨을 간직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길이 가깝다고 해도 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며, 일이 작다고 해도 하지 않으면 성취되지 않는다(순자).
사진설명: 성모의 결혼(라파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