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히 사랑하는 관계였는데, 그 관계가 틀어져 오히려 원수가 되는 경우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를 비교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는 무엇인가를 계속 주고 싶습니다.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리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믿음과 신뢰로 상대방을 대하고 있습니다.
미워할 때는 억울함에서 시작됩니다. 나만 주고 상대는 받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받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에게 나는 호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남과의 비교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남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됩니다.
사랑은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습니다. 내 사랑이 ‘1’이니, 상대방도 ‘1’의 사랑을 줘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의 크기를 정확하게 잴 수 있는 도구는 세상에 없습니다. 주고 받는 사랑의 크기가 같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똑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인정해야 사랑에, 특히 주는 사랑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사랑이었고, 사도 바오로가 말한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사랑입니다.
주님의 자녀는 바로 주님처럼 사랑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소금과 빛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요.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또 빛을 함지 속에 가둬 놓아서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을 내어 줄 수 있어야 의미 있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을 수 있을까요? 아마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짠맛을 잃기도 합니다. 사해에서 생산되는 소금에는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려 습도가 올라가면 염분이 가시고 불순물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짠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신앙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주님 사랑이 뜨거워서 절대로 죄를 짓지 않으며 살아갈까요? 그렇지 않지요. 이스라엘의 사해 소금처럼 짠맛을 잃어 주님의 뜻을 전혀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환하게 비출 수 있는 빛을 함지 속에 가둬 놓아서 밝게 빛나는 세상이 되지 못하게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선을 실천하는 삶, 즉 사랑의 삶만이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으며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잘 경청하라. 당신의 귀는 당신을 곤란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프랭크 타이거).
사진설명: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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