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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영성 ㅣ 묵상

2021년 4월 6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우연히 어렸을 때 봤던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고등학교 때에 시험 끝나고 학교에서 단체로 극장에 가서 봤던 영화였습니다. 당시에 너무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열심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타임머신을 타고서 미래의 시간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래의 ‘나’를 만나게 되지요.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크게 실망합니다. 나이 많은 미래의 나는 젊은 현재의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여정 안에 수많은 ‘나’가 있습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과거나 미래에 간다면 그 시간의 저 역시 지금의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황혼의 시간을 사는 미래의 ‘나’는 지금 중년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아주 어린 과거의 ‘나’ 역시 아저씨인 ‘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모두 같은 ‘나’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과거와 미래의 ‘나’ 모두가 지금의 ‘나’와 연관되어있지만, 너무 큰 차이로 자신조차도 인정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나’의 모습을 모두 인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은 전혀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했으면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무덤까지도 찾아갔겠습니까? 그 사랑 때문일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문제는 그렇게 사랑한다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부활을 알아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모두 같은 ‘나’이지만, 과거와 미래의 ‘나’와는 너무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육화된 예수님만 기억하는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야!”라고 이름을 부르십니다.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냥 그곳에서 일하는 정원지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곧바로 “라뿌니!”라고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다른 모습도 알아보게 됩니다.
우리 삶 안에서 주님께서는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어떤 모습이든 다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아이리스 머독).
사진설명: '라뿌니' 라고 부르는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