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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영성 ㅣ 묵상

잊어버리는 은총


도심지에서와 달리 갑곶성지에서는 아주 다양한 동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고라니, 어렸을 때 만화로만 봤던 딱따구리, 며칠 전에는 너구리를 만나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밖에도 참 많은 동물을 보게 됩니다.
작년 가을, 아침에 성지 마당을 산책하는데 청설모를 만났습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를 옮겨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청설모를 보며 언젠가 책에서 봤던 글의 내용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바로 청설모와 다람쥐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청설모와 다람쥐가 가장 좋아하는 식량은 도토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청설모와 다람쥐는 겨울철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땅속 곳곳에 맛있는 도토리를 숨겨 둔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청설모와 다람쥐의 머리가 너무 안 좋아서 숨겨 둔 도토리를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양이 자그마치 숨겨 둔 도토리의 95%라고 하네요.
이렇게 못 찾은 도토리는 어떻게 될까요? 땅속에서 싹을 틔워 나무가 됩니다. 청설모와 다람쥐의 나쁜 기억력이 나무를 자라게 해서 숲을 이루게 합니다.
기억하지 못함도 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선 주변 사람이 힘들어집니다. 적당히 잊을 수 있는 것, 이것도 은총이 아닐까요?
사진설명: 오병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