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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영성 ㅣ 묵상

2021년 5월 24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꼼꼼한 직장 상사가 있었습니다. 특히 보고서를 들고 가면 그 꼼꼼함은 절정에 다다릅니다. 한참을 보고서에 집중하던 상사는 잠시 뒤 지적에 들어갑니다. 문제는 보고서의 내용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의 오탈자를 기가 막히게 찾아서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오탈자가 세 개나 있어. 정신 차려야지.”

이 상사 밑에 있는 직원들은 아마도 보고서의 내용보다 오탈자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 보고서의 내용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오탈자 교정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다른 상사 밑의 직원들은 어떨까요? 그 직원들은 보고서의 내용, 참신한 아이디어에만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탈자가 있는 것은 ‘그럴 수 있지 뭐.’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그룹 중에 어느 그룹이 더 높은 성장을 보일까요? 당연히 오탈자보다 내용에 신경 쓰는 그룹일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착각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율법과 이 율법의 준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정말로 억울한 일입니다. 그런데 죽음 직전까지도 사랑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어떻게든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더 중요한 것은 복수의 차원에서 그들이 벌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구원이라는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 직전에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고는 어머니에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맡기시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 우리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 순간입니다. 단순히 홀로 되신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위로를 받으며 주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미움, 복수, 욕심…. 어쩌면 모두가 순간의 만족만을 줄 뿐이었습니다. 미워하는 것도, 복수하는 것도, 내 욕심을 키워나가는 것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쫓아서 가야 함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어머니 성모님을 통해서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탈무드).


사진설명: 십자가 아래의 성모님과 요한사도.